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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김씨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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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김씨 유래

m01.png 경주김씨 본관의 유래

 

서기 전 57년 4월 진한(辰韓)의 한 소국인 사로국(斯盧國)을 이룬 6개 촌락의 6부 촌장(6部 村長)이 연합하여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옹립하여 고대 국가를 형성하고 국호를 서라벌(徐羅伐), 사로(斯盧), 사라(斯羅)로 하고 수도를 금성(金城)이라 하였고 그 후 국호를 시림(始林)으로 부르다가 4대 탈해왕(脫解王) 9년(서기 65년) 3월 김알지(金閼智) 탄생 후에 국호를 계림(雞林)으로 고쳤다가 14대 기림왕(基臨王 10년(서기 307년)에 다시 국호를 신라(新羅)로 환원하였다.

 

김씨란 성을 갖게 된 것은 중국의 ‘북제서’에 나오는데 신라 24대 진흥왕부터였으며 진흥왕은 김삼맥종(金彡麥宗)이란 성과 이름을 갖게 되었다.

“신라(新羅)”란 뜻은 대덕일신(大德日新) 왈(曰) “신(新)”이요, 망라사방(網羅四方) 왈(曰) “라(羅)”이다.

그 후에도 월성(月城), 낙랑(樂浪) 등으로 호칭하다가 신라로 또 환원되어 경순왕 대(代)까지 내려왔다.

 

고려 태조 18년(서기 935년) 11월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이 고려에 손국(遜國)한 후 신라를 경주(慶州)라고 개칭하고, 고려 태조 왕건은 경순왕이 고려에 순순히 손국한 것을 가상히 여겨 경순(敬順)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정승공(政丞公) 상부령(尙父令)으로 봉하고 경순왕을 위하여 경주 일대 식읍(食邑) 팔천호(八阡戶)를 하사하고 사심관으로 봉했다. 사심관으로 임명하면서 왕건 태조의 장녀 낙랑공주왕씨와 공주 왕씨의 2딸을 하가(下嫁)시키니 이로 인하여 “경주”가 우리 김씨의 본관1)이 된 것이다.

고려 때부터 본관제도가 등장하였던 것이다.

 

 1) 시조, 혹은 중시조의 출신지. 또는 씨족의 세거지를 근거로 설정하는 것인데, 본관을 일명(一名) 향적(鄕籍)이라 하였으니, 이를테면 시조나 씨족의 고향을 일컫는 말이다.

 

 

※ 경주김씨 5개파(영분공파, 대안군파, 태사공파, 판도판서공파, 장군공파)는 본관이 같은 경주김씨라고는 하나 세거지(世居地)만 같을 뿐 조상과의 연계(連繫)는 알 수 없다.